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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공급망 재편의 시대, 중국 의존이라는 구조적 리스크

바이오 공급망 재편의 시대, 중국 의존이라는 구조적 리스크

미국이 바이오 산업을 안보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2025년 11월, 미 상·하원은 국가 바이오제약 제조 우수 센터(National Biopharmaceutical Manufacturing Center of Excellence) 설립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공공-민간 협력 형태로 첨단 제조시설을 구축해, 바이오제약 생산의 내재화를 강화하고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 의회는 이 센터를 통해 의약품 설계 기반 품질관리(QbD)와 화학·제조·품질관리(CMC) 기술을 고도화해, 바이오제약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 기술·안보·산업의 결합

이번 법안은 팬데믹 이후 미국 내에서 심화된 원료의약품(API) 공급 불안과 직접 맞물린다. 현재 미국의 의약품 원료 수입의 약 35%가 중국산이며, 항생제·해열진통제 등 일부 품목의 중국산 비중은 80%를 넘는다. NSCEB(국가생명공학안보위원회)는 올해 중국의 우시 앱텍(WuXi AppTec)이 미국 생물보안망에 깊이 관여돼 있다고 경고하면서, 49개 정책 권고안을 내놨다. 이후 바이오제약 제조센터 설립은 기술 리쇼어링을 제도화한 후속조치다. 미국은 반도체·배터리에 이어 바이오를 제3의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세제 혜택·R&D 인프라·공공조달을 동시에 묶은 3중 패키지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 API 자급률 13~19%, 항생제 원료 70% 이상 중국 의존

한국도 같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2024년 기준 정부가 지정한 국가필수의약품은 총 473개다. 그러나 이 중 22.8%인 102개는 품목 허가조차 없고, 27.5%인 123개는 실제로 유통되지 않아 환자에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그중 전신작용 항감염제(항생제 포함)가 전체의 32%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인다. 하지만 항생제 생산의 기반이 되는 원료의약품(API) 자급률은 13~19% 수준에 불과하며, 68%가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되고 있다.


국내 완제의약품 시장이 2023년 31.5조 원으로 연평균 10.9% 성장하는 동안, 원료의약품 시장은 3.9조 원 규모로 -1.7% 역성장을 기록했다. 완제의약품 대비 원료 시장 비중은 12.4% 수준이다. 특히 β-락탐계 항생제(페니실린계, 세파계, 카바페넴계)가 국내 항생제 시장의 60%를 차지하지만, 핵심 중간체(6-APA, 7-ACA 등)는 대부분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중간체 생산거점 7곳 중 5곳(71%)이 중국에 위치해 있으며, 국내에서는 사실상 생산 기반이 전무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종근당바이오·CJ·대상이 7-ACA 원료를 자체 생산하며 글로벌 시장의 28%를 점유했으나, 지금은 모두 철수했다. 중국산 원료의 가격 경쟁력과 국내 약가 인하, 설비 투자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산업이 붕괴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완제의약품에서는 성장세를 보이지만, 원료와 기초소재 수준에서는 제조형 종속국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안보형 바이오망으로 이동

세계는 이제 바이오 공급망을 기술·안보·경제의 3축으로 재편 중이다.
① 미국 중심의 기술안보형 공급망,
② 유럽 중심의 품질규제형 공급망,
③ 중국 중심의 가격경쟁형 공급망이 병존하며,
한국은 이 사이에서 새로운 위치를 찾아야 한다. 특히 중국산 원료의약품 비중이 43%, 일부 항생제는 70% 이상이라는 구조는, 외부 변수(수출규제·기후위기·정치 리스크)에 따라 언제든 공급이 흔들릴 수 있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한국 정부는 국가 바이오 원부자재 자립화 프로젝트(2026년까지 1.2조 원 투자)를 추진 중이며, 원료 국산화와 생산 인프라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원료 생산시설의 60%가 중소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글로벌 GMP 수준에 미달하는 설비 비율이 높아 기술 내재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약가 인하와 공급망의 연결 고리

약가 인하 정책은 공급망 재편과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절감을 위해 약가를 낮추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낮아진 수익을 메우기 위해 더 싼 원료, 즉 중국과 인도산 API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원료 생산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국내 API 자급률이 13~19% 수준으로 낮은 이유 중 하나가 지속된 약가 인하 압력이다. 가격이 낮아질수록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의 유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가 정책은 단순한 비용 통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략의 일부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제네릭의 약가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되, 필수의약품과 핵심 원료 산업에는 가치 기반 보상과 공급망 안정화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약가와 공급망은 대립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이며, 정책 조정의 초점은 가격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아니라 국가 공급망을 얼마나 지탱하느냐에 두어야 한다.

결론: 공급망 재편은 산업의 생존전략이다

바이오산업의 경쟁은 기술이 아니라 공급망이다. 미국이 바이오제약 제조 우수 센터를 통해 기술 리쇼어링을 제도화한 것은 바이오 안보를 산업 전략으로 격상시킨 사례다. 한국은 원료 자급률 13~19%, 항생제 시장 70% 중국 의존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를 벗어나기 위해, 단기적 수급 안정에서 장기적 공급망 독립성 확보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규제 효율화·인프라 투자·가격체계 개선을 병행하고, 업계는 기술 내재화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공급망 재편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약가 인하, 원료 다변화, 의료관광·바이오 수출 연계는 모두 이 전략의 일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다. 한국 바이오의 다음 10년은, 공급망을 얼마나 빨리 현실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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